Gustav Klimt (1862-1918)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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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1907)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그림.

황금색의 커다란 옷을 남자가 여자를 포옹한 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키스를 하고 있다.

여자는 눈을 꼭 감고 있다.

그들이 키스를 하고 있는 곳은  꽃밭 위일까, 절벽 위일까?

관능적이지만 화려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실제 금박과 금색 물감을 썼기 때문이다.

[키스]

화가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1862년에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금 세공업자였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클림트가 14세 되던 해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솜씨를 눈여겨 본 친척의 도움으로 빈의 국립 응용미술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모자이크 기법이나 금속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스의 도자기 미술, 이집트의 부조등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1

883년 졸업 후에 그의 동생 에른스트와 동료 학생 프란츠 마치와 함께 공방을 차려 공공건물에 벽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1886년 클림트는 부르크 극장을 장식하는 큰 작품을 맡게 되었다.1888년에 완성된 <구 부르크 극장의 관객석>은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세밀한 초상을 섬세하게 그려 넣어 보는 이들의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작업으로 그는 황제에게 특별 격려상인 황금공로십자훈장을 받았고 이로 인해 그들의 명성은 빈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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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브르크 극장의 관객석]

하지만1892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몇 달 후인 동생 에른스트가 독감에 이어 심낭염으로 사망했다. 그 슬픔으로 클림트는 3년 동안 창작을 못했다. 위기를 극복하고 제작한 <사랑>(1895)은 그의 최초의 걸작이다. 두 연인들 뒤로 질투의 얼굴들이 보인다. 현실적인 내용과 추상적인 내용이 그림 화면 속에 동시에 등장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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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황금을 사용함으로써 클림트의 ‘황금스타일’ 시작을 알린 중요한 작품으로 39세에 그린 <유디트1>이 있다. 무엇에 도취된 듯한 그녀의 표정과 화려한 금색 장식을 보다가 오른쪽 아래에  목이 잘린 한 남자의 얼굴이 나중에야 눈에 들어온다.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미망인으로 이스라엘에 침략한 앗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그의 목을 베어 버리고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팜므파탈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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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1]

그림의 기하학적이고 상징적인 무늬나 눈부신 금색 장식은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하던 일본풍, 즉 자포니즘(Japonism)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클림트는 평생 동안 결혼을 하지 않고 많은 여인들과 만났다. 그가 죽고 나서 14명의 여자들이 친자 소송을 냈다. 한 명의 여자에게 안주 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평생 함께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에밀리 플뢰게, 죽은 동생의 부인으로 늘 클림트와 함께 했다.

클림트가1918년 1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도 그는 플뢰게를 찾았다. 그녀는 클림트가 죽고 나서 14명의 여자들에게 재산 분배를 해주고 클림트의 편지를 태워 그의 비밀을 지켜 주었다.

그는 생전에 자기 작품에 대해서 설명을 한 적이 없고, 인터뷰도 하지 않았으며, 사생활은 철저히 숨겼다.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단 한 점도 남기지 않았다.

1918년에 클림트가 죽은 후 50년 동안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1980년대 후반 그의 작품이 급부상하더니 20세기에 가장 인기 있는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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